한달에 1000만원 쉽거나 어렵거나 둘중 하나….
난 프로그래머 문호영이다
나니깐 가능하다?
“문호영 대표님이니깐 가능한겁니다”
나는 이러한 소리를 많이 들었다.
“문호영 대표님은 천재이십니다!!”
이런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보다 훨씬 잘 나가고 월 1억 ~ 10억 심지어 세상 전체를 놓고 보면 100억 이상도 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 중 한명이다.
나는 이 문장을 2023년 7월 29일 수정을 한다.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 중 한명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되었다.
나는 특별하다. 왜냐하면 남들처럼 평범하지 않았고 평범하다고 위안삼으면서 남들과 똑같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어머니도 나의 아내도 나의 지인들도 하나같이 나를 보면서 평범하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난 특별하다. 다른사람들을 도와주는 특별한 임무를 갖고 있다!
한달에 1000만원 버는것은 나에게 쉽다면 한달에 1억 버는것도 나에겐 쉽다라고 나는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날 가파도에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정말 날라가는줄 알았다.
저런 아제 개그를 하는거보면 모르겠는가 ㅎㅎㅎ 그저 평범한 아저씨일뿐이다.
나의 학창 시절은 남달랐다
자! 그럼 나의 과거를 돌아가보겠다.
오늘 이 내용은 조금 길다..
나의 중학교시절부터 40대까지를 간략하게 이야기했지만 그래도 길다.
나는 중학교때 과학고를 들어가고싶어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때 국어(언어영역)점수가 한문제 차이로 커트라인에서 떨어졌던 기억이있다.
그 이후 중3때에는 밤새도록 PC통신만 하다 결국 성적은 떨어져 인문계를 갈수있을까싶었다.
다행히 커트라인으로 대건고등학교 인문계를 들어가게되었다.
그당시 내 친구들은 서효근, 헌병환, 최세진, 김인식이 등 반에서 1등, 전교 1~2등 하던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지금 그 친구들은 삼성중공업 등 모두 대기업 혹은 외국계 대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다.
채기현이라는 친구는 학원에서 알게되었는데 1층이 중국집이고 2층이 자기집이었던 건물주 부모님의 아들이다.
그친구는 현재 경주교도소에서 교도관으로 공문원이다.
나만 성적이 안좋았다.
공부를 안했으니 이는 당연한 결과다!!! 그리고 우리집은 가난했다.
이런것들은 그저 과거일뿐이지 나를 묶을순없었다.
대신 발목 잡힌것은 직장 처음 들어갈때랑 결혼할때 대부분 지인들에게 나는 배우자에서 제외대상이었다.
덕분에 감사할뿐이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올라갈때 우리반 1등이 뒤돌아서 나에게 물었다.
“혹시 니가 우리반 1등이냐?” 맹근호라는 친구인데 정말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이름이 맹근호 너무 독특하지않냐? 평생 잊고 싶어도 못 잊을 이름이다. 근호야 보면 연락하자 ㅎㅎ
(이글을 수정하는 2022년 11월 17일 아직도 그날은 생생하다…)
자신이 1등이면서 나에게 오히려 1등이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게 생겼나보더라….나는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반에서 1등급을 유지하는 과목이 유일하게 2개가 있었다.
바로 수학과 물리였다. 그이외에는 내가 관심조차 없어서 책도 읽지 않았다.
(이부분은 나의 생각이지 실제로 성적표를 보면 또 그렇지 않을수있다.
수학과 과학(특히 물리2)을 매우 좋아했었기에 성적까지 좋았다고 착각할수도있으니
나중에 혹시라도 성적표가 공개되더라도 흠잡기 바란다!!)
결국 나는 수학과 물리는 반에서 1~3등을 했지만 전체성적은 반에서 꼴찌를 했다.
55명중 54등을 했었으며 55등인 영수야~ 내가 너랑 성적이 몇점 차이 안났었다~ ㅎㅎ 이름 말해도 되지? 어떻게 사냐 ㅎㅎ
암튼.. 나는 이렇게 4년제도 못가는가 싶었는데…
99학번인 나는 운이 좋게도 수능세대라서 그냥 경북대에 찔러넣을껄 했었는데
안타깝게도 내 실력에 무슨 하면서 반에서 꼴찌하던 내가 경북대 컴퓨터공학에 원서를 넣지 않았다.
만약 넣었다면 정시 미달로 인해서 합격했을뻔했는데 아쉽게도 나는 대구한의대학교에 1년 입학금을 내기 위해 들어갔다.
지금까지는 내가 가방끈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이때까지 내 머릿속에 우리아버지는 왜 이렇게 돈을 못버는걸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초등학교시절부터 내가 대학교 들어갈때까지 한결같이 100~150만원을 벌고 계셨다.
한달에 1000만원 벌고 싶었다
그래서 난 결심했다!!
‘나는 커서 아버지보다 엄청 많은 돈을 벌꺼야!!’
‘아버지처럼 가난하게 살진않을꺼야!! 부자가될꺼야!!’
이부분이 사실 엄청 크긴했다.
고등학교때 누가 돈벌생각을 했겠는가?
나는 고3때 반에서 꼴찌를 유지했지만 한달반정도? 무언가를팔아서 500만원정도 돈을 벌었다.
혹시 나처럼 고등학교 시절때 돈벌려고 맘먹었던 사람들이 있을까?
물론~ 가정형편이 어렵고 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나처럼 했었을것이다
그렇게 나는 고3때 왠만한 직장인들만큼 돈액수를 벌어본 경험이 있다보니
대학교때부터는 돈에 대한 개념이 남들과 달랐다.
‘돈은 그저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벌수있겠구나’ 라는 생각!!
다시 학벌이야기와 돈버는이야기를 겸해가면서 이야기해보겠다.
나는 게임을 해도 돈을 벌었다
대학교시절 나는 스타크래프트 라는 게임에서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가는 PC방 마다 내가 제일 잘했었다.
(난 군대에 가서도 이등병때 모든 고참을 이겼다. 신병일때 상병말호봉 고참을 10분안에 이길수 있다 말하고 7분 30초만에 이길수 있는 자신있는가?)
헌터에서 포토캐논 깔고 배째라 게기더라도 30분만에 엘리시킬수 있다고 말했고 정정당당하게 붙으면 10분안에 이길수 있다고 했다.
난 그동안 내가 가장 잘하는게 뭐냐고 물어보면 딱히 학교시절에는 뭔가 내세울건 없었고..
특기에 매번 적었던것이 태권도였다. 특기에 수학적을순없잖아!!!
어릴적 장래희망에는 엄마의 강요에 의해 목사를 적다가 머리가 굵어지면서 프로그래머를 매번 적어왔다.
고등학교시절에 이미 프로그래머라는 장래희망과 해킹같은것에 관심이 많아
나우누리에서 다른사람들에게 유용한 프로그램인척 만든 프로그램을 배포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힘들고 어렵게 했던 기억이 있다.
이 부분은 20살 후반까지 네이버 상위노출, 연관검색어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을 제작해서 혼자 몰래 사용했었으니.
사실 그때까지 정신을 못차렸었다.
게임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야겠다.
대구한의대학교에는 사실 매일 게임을하기 위해 갔었다.
킹오파는 소질이 없는건지 뒤늦게 배워서 그런지 매번 상대에게 지곤했다.
하지만 게임방만 가면 1:3까지 제안을 해가면서 스타크래프트를 이기다싶이 하니 대구에 총 3개의 PC방에서 내가 오면 돈을 받지 않았다.
난 그러한 재미로 게임방 사장님들과 친해졌고 가는 PC방마다 아지트가 되어서 게임하는 폐인들을 많이 알게되었다.
내친구들은 그당시 대기업을 위해서 열심히 졸업준비하고있을시절..
나는 전국대회에 나가서 작은돈이지만 주단위로 돈을 벌어왔다.
그러다 타이베리안선이라는 1억대회가 있었는데…
사실 그 대회에서 내가 세계랭킹 1위를 이길정도로 완벽하게 연습을 해서 1억을 타기 위해 본선에 진출했다.
그런데 이날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고수들이 하던 방식이 아닌 초보들이 하는 이상한 방식으로 룰을 바꾸더니..
게다가 내가 안하던 실수를 3연속 해버리니…차비만 얻고 내려와야했다.
그때 내가 졌던 상대가 스피드마우스라는 닉네임의 세계랭킹 1위였다.
아마 그친구가 이 글을 보면 참 반가울것이다!!
인터넷을 뒤져도 유일하게 이 글밖에 없을테니깐!! 그 친구의 추억이자 내경험
(이쯤 되면 내 성격 좀 알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독불장군에 거만에 쩔어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게임계에서도 내가 우물안 개구리라는 사실을 점점 깨닫게된다.
스타 전국대회에 나가서 프로게이머들과 본선에서 마주쳤지만 김대기 이런친구들에게 무참히 짖밟히면서
더이상 경쟁하는 구도의 무언가를 하지 않기로 결심하게된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1.고등학교때 반에서 성적으로 경쟁하지않았고
2.대학교에서 직장을 들어가기 위해서 경쟁하지 않았다
3.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스타크래프트같은 게임을 열심히 해서 이기는것도 하지않기로 맘먹게 되었다.
남들이 하지않는 독점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되었고
스타에서 일꾼이 많을수록 같은 조건에서 게임이 유리해지는것을 알게되어
일할때에 일꾼이 많으면 돈을 빨리 벌수 있다는것을 알고 일꾼을 계속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을 이용해서 일꾼을 만들지만 나는 그 방식을 택하지 않았고
컴퓨터(서버)같은 기계를 이용해서 내가 만든 프로그램으로 나의 손과 발을 만들었다.
리니지 게임에서 이러한 것들을 최대한 적용해서 독점상권을 장악하는 기술을 마스터하고 24세~26세 나이로 억단위의 돈을 만져보게된다
30대가 되어가는 어느해…
나는 내 인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된다.
과연 이렇게 게임만 하면서 어른이 될수있을까?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싶고…
남들처럼 그저 올바른일을 하면서 지내고싶다…
결혼을 하게되면 우리 아이들이 내가 하는것들을 볼텐데…가치있는거…뭘까?
잠시 직장을 다녀보았지만 그때도 평범하진 않다.
한달에 1000만원 이때 못 벌었다
그렇게 나는 28세의 나이에 서울 모바일 프로그램 회사에 취업하게된다.
학벌이 고졸신분이라(참고로 게임한다고 정신없이 놀다 돈벌겠다며 군대제대후 자퇴를 선언했다.
1년 낸 학비가 아깝긴했지만 3년 더 내는것보단…) 그당시 같이 게임하던 친구들보다 페이가 낮은 회사에 4대보험도 없이 취직을 했다.
친구들은 2400만원으로 시작하는 첫 연봉을 나는 고졸연봉 남들이 1600만원~1800만원 받을 때 사장님께 2000만원 맞춰달라 말하고 시작했다.
일단 배우면서 연봉을 올리든 뭐든 해보자였다.
나가는것도 없다보니 166만원 통장에 그대로 들어왔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내 생활비 몇십만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다 보내드렸다.
그렇게 1년가까이 하니… 서글프기도했고…외롭다는 생각도들었다.
20대 초에 월 천만원씩 벌다가 한달에 166만원을 버는 내 자신도 그렇고…
안되겠다싶어서 결혼하기로 맘먹고 대구에 결혼하기 위해서 가야한다며
(이때 심미정 사장님인데 어이없어하셨다..
여자친구도없으면서 무슨 결혼때문에 대구를 가냐하며 집때문이야?
월급 더올려줘? 그랬었다….연봉3,000만원 올려주면 과연 있었을까?ㅎㅎ)
2008년 5월 21일 대구로 내려와서 비슷한 연봉의 모든넷 이라는곳으로 회사를 옮기게된다.
모든넷 회사는 계명대에서 성서에 있는 이노비즈 건물로 옮기던 딱 그 시기였다.
4개월 다니고 퇴사했지만 그당시 지냈던 동료들은 영주시청과 구미시청을 JSP언어로 유지보수했기에 잘 알고 있다.
이때부터 나는 직장인이 아닌가 싶을정도로 일하는게 싫었다.
(참고로 이때 대구에와서 바로 만난 아내가 현재 나의 아내이다) 또 다른회사로 옮겼다..
3개월~6개월 너무 짧은기간에 나는 계속 2-3회 더 옮기면서 …프로그래머가 적성이 맞지않는건가?
그렇게 나는 28세의 나이에 서울 모바일 프로그램 회사에 취업하게된다.
학벌이 고졸신분이라(참고로 게임한다고 정신없이 놀다 돈벌겠다며 군대제대후 자퇴를 선언했다.
1년 낸 학비가 아깝긴했지만 3년 더 내는것보단…) 그당시 같이 게임하던 친구들보다 페이가 낮은 회사에 4대보험도 없이 취직을 했다.
친구들은 2400만원으로 시작하는 첫 연봉을 나는 고졸연봉 남들이 1600만원~1800만원 받을 때 사장님께 2000만원 맞춰달라 말하고 시작했다.
일단 배우면서 연봉을 올리든 뭐든 해보자였다.
나가는것도 없다보니 166만원 통장에 그대로 들어왔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내 생활비 몇십만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다 보내드렸다.
그렇게 1년가까이 하니… 서글프기도했고…외롭다는 생각도들었다.
20대 초에 월 천만원씩 벌다가 한달에 166만원을 버는 내 자신도 그렇고…
안되겠다싶어서 결혼하기로 맘먹고 대구에 결혼하기 위해서 가야한다며
(이때 심미정 사장님인데 어이없어하셨다..
여자친구도없으면서 무슨 결혼때문에 대구를 가냐하며 집때문이야?
월급 더올려줘? 그랬었다….연봉3,000만원 올려주면 과연 있었을까?ㅎㅎ)
2008년 5월 21일 대구로 내려와서 비슷한 연봉의 모든넷 이라는곳으로 회사를 옮기게된다.
모든넷 회사는 계명대에서 성서에 있는 이노비즈 건물로 옮기던 딱 그 시기였다.
4개월 다니고 퇴사했지만 그당시 지냈던 동료들은 영주시청과 구미시청을 JSP언어로 유지보수했기에 잘 알고 있다.
이때부터 나는 직장인이 아닌가 싶을정도로 일하는게 싫었다.
(참고로 이때 대구에와서 바로 만난 아내가 현재 나의 아내이다) 또 다른회사로 옮겼다..
3개월~6개월 너무 짧은기간에 나는 계속 2-3회 더 옮기면서 …프로그래머가 적성이 맞지않는건가?
구영수 대표님이 공동으로 대표로 맡고 있던 리더스 홈페이지 에이전시 회사도 한 3개월 다녔다.
한달에 1000만원 못 벌면 포기할수있다
프로그래머를 포기하고 디자인을 할까?
프로그래머를 포기하고 부동산 일을 할까?
하면서 부동산에도 들어갔다가 디자인도 배우기 위해 디자인학원에도 10개월정도 다니곤했다.
그런데….다른곳에 가서 나의 재능을 알게된것이다.
디자인을 배우러 갔더니 프로그램을 다른사람에게 알려주고있고…
부동산에 갔더니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고…
그당시 팀장이 프로그램을 잘 못 만드는거 같아서 많이 알려주고 가르쳐주기도했다..
그러다 팀장제안도 받기도했으며..
결정적으로 NC소프트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다.
나는 이때 나의 인생이 다시 꽃길로 향하는줄 알았다.
알지? 지금 리니지M 게임 만든 바로 그 회사이다.
그때 나에게 제안은 이랬다.
회사에와서 개발좀 해달라는거였다.
왜냐하면 내가 직장 다니면서 틈틈히 내 서버에다가 아이온 장비 탐색기를 개발해서
아이온게이머들 사이에서 내가 만든 툴을 많이 쓰자 트래픽이 전국랭킹 1000위안에 들어갈수준이었다.
이희주 차장? 한이된건가…무슨 10년이 넘었는데 이름 그대로 기억하고있다니…
이럴때보면 내 머리가 진짜로 좋은건가 싶기도하다.. 왜케 기억을 잘하는지 모르겠다.
난 한번 보면 대부분 기억을한다.
아니…더 정확히 말하면!!!..내가 기억하고싶은것만 기억을 잘 한다.
그당시 차장이었는데 지금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본부장정도 됐겠지? 훗ㅋ
그때 내가 개발한 작품 잘 뺏어가서 지금 그 자리 계신거 축하드립니다.
괜히 실명거론해서 이 글 차단당할라 ㅎㅎ
만약 이 글이 누군가에 의해 제재당해서 검색에서 사라진다면 엔시소프트 이희주라는 사람때문일것이다.
난 사실만 이야기하겠다!
서울 삼성동 엔시소프트 본사까지 오라해서 갔었고!
밥사주시길래 잘 얻어먹었다.
그리고 입사하라며 나에게 이력서를 제출하라하길래…. 나는 제안을 했다.
그날 같이 올라간 동생과 같이 입사를 시켜달라했다.
알겠다는 답과함께 이력서를 제출하였지만 돌아온 결과를 나의 학벌과 나의 거만함으로인해 모든것이 무산되고 심지어 내가 만든 컨텐츠까지 뺏어갔다.
내가 데려갔던 그 친구는 학교가 조금 못났긴해도 구미 금오공대였다.
나는 나의 학벌과 거만함때문이라고 생각하고있다.
하지만 내 서버를 아이피 차단 7회 해가면서 내가 만든 컨텐츠를 싹 가지고 가서 서비스화 시킨것에 대해서는 조금 억울해서 내 이력에 이희주 차장을 넣었다.
지금은 나보다 더 잘살고 있을테니 이 글보고도 그냥 웃을꺼야
한달에 1000만원 벌려면 응용과 창의뿐이다!!
그당시 깨닫기도했다.
남의 컨텐츠를 이용하면 이렇게 끝이 안좋구나….
그리고 함께 올라갔던 이친구는 다시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돈 잘벌면서 해외여행다닌다고 나랑 연락도 잘 안되고..
난 외삼촌회사에 들어가서 또 조용히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233만원의 돈을 받아가며 지냈다…
학벌과 직장이 없다는 이유로 대부분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했고
(지금은 교회에서도 그 비슷한 경우를 당하고 있어서 직분도 안받기로 결심했다)
그나마 나의 아내는 나의 신앙하나보고(사실 난 신앙도 없었다. 교회만 나갔지..
죄도 많이 짓고 아직까지도 그러하다…물론 지금은 많이회개기도하고 반성도 하고 뉘우치고있다..)
결혼했다고 하니.. 참 감사하다..
그때 결혼대상으로 나는 다른사람들의 후보에 있지도않았었다 ㅎㅎ
소개를 시켜주는 분들도 극히 드물었고 암튼 그랬었다..
프로그래머를 포기하고 디자인을 할까?
프로그래머를 포기하고 부동산 일을 할까?
하면서 부동산에도 들어갔다가 디자인도 배우기 위해 디자인학원에도 10개월정도 다니곤했다.
그런데….다른곳에 가서 나의 재능을 알게된것이다.
디자인을 배우러 갔더니 프로그램을 다른사람에게 알려주고있고...
부동산에 갔더니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고…
그당시 팀장이 프로그램을 잘 못 만드는거 같아서 많이 알려주고 가르쳐주기도했다..
그러다 팀장제안도 받기도했으며..
결정적으로 NC소프트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다.
나는 이때 나의 인생이 다시 꽃길로 향하는줄 알았다.
알지? 지금 리니지M 게임 만든 바로 그 회사이다.
그때 나에게 제안은 이랬다.
회사에와서 개발좀 해달라는거였다.
왜냐하면 내가 직장 다니면서 틈틈히 내 서버에다가 아이온 장비 탐색기를 개발해서
아이온게이머들 사이에서 내가 만든 툴을 많이 쓰자 트래픽이 전국랭킹 1000위안에 들어갈수준이었다.
이희주 차장? 한이된건가…무슨 10년이 넘었는데 이름 그대로 기억하고있다니…
이럴때보면 내 머리가 진짜로 좋은건가 싶기도하다.. 왜케 기억을 잘하는지 모르겠다.
난 한번 보면 대부분 기억을한다.
아니…더 정확히 말하면!!!..내가 기억하고싶은것만 기억을 잘 한다.
그당시 차장이었는데 지금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본부장정도 됐겠지? 훗ㅋ
그때 내가 개발한 작품 잘 뺏어가서 지금 그 자리 계신거 축하드립니다.
괜히 실명거론해서 이 글 차단당할라 ㅎㅎ
만약 이 글이 누군가에 의해 제재당해서 검색에서 사라진다면 엔시소프트 이희주라는 사람때문일것이다.
난 사실만 이야기하겠다!
서울 삼성동 엔시소프트 본사까지 오라해서 갔었고!
밥사주시길래 잘 얻어먹었다.
그리고 입사하라며 나에게 이력서를 제출하라하길래…. 나는 제안을 했다.
그날 같이 올라간 동생과 같이 입사를 시켜달라했다.
알겠다는 답과함께 이력서를 제출하였지만 돌아온 결과를 나의 학벌과 나의 거만함으로인해 모든것이 무산되고 심지어 내가 만든 컨텐츠까지 뺏어갔다.
내가 데려갔던 그 친구는 학교가 조금 못났긴해도 구미 금오공대였다.
나는 나의 학벌과 거만함때문이라고 생각하고있다.
하지만 내 서버를 아이피 차단 7회 해가면서 내가 만든 컨텐츠를 싹 가지고 가서 서비스화 시킨것에 대해서는 조금 억울해서 내 이력에 이희주 차장을 넣었다.
지금은 나보다 더 잘살고 있을테니 이 글보고도 그냥 웃을꺼야
그당시 깨닫기도했다.
남의 컨텐츠를 이용하면 이렇게 끝이 안좋구나….
그리고 함께 올라갔던 이친구는 다시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돈 잘벌면서 해외여행다닌다고 나랑 연락도 잘 안되고..
난 외삼촌회사에 들어가서 또 조용히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233만원의 돈을 받아가며 지냈다…
학벌과 직장이 없다는 이유로 대부분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했고
(지금은 교회에서도 그 비슷한 경우를 당하고 있어서 직분도 안받기로 결심했다)
그나마 나의 아내는 나의 신앙하나보고(사실 난 신앙도 없었다. 교회만 나갔지..
죄도 많이 짓고 아직까지도 그러하다…물론 지금은 많이회개기도하고 반성도 하고 뉘우치고있다..)
결혼했다고 하니.. 참 감사하다..
그때 결혼대상으로 나는 다른사람들의 후보에 있지도않았었다 ㅎㅎ
소개를 시켜주는 분들도 극히 드물었고 암튼 그랬었다..
결혼 후의 삶도 특별했다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고… 자녀가 생기고…
위의 사진은 둘째 돌잔치를 우리집안 외가댁 식구와 아내집안 외가식구 총 30명넘는 집안식구들을 우리집에 초대했었다. (이땐 대학원에서 이미 나온상태)
나에게는 변화가 필요했다..
자녀들에게 멋진 아빠가 되고싶어서 늦은나이지만 대학교도 졸업하고…
30대 중반에 대학원을 가고싶었다. 남들은 고졸이라서 절대 갈수 없다라고 못을 박아놨더군…..
그래도 혹시 열심히 해주는 사람에게 운이라는게 있으니 가능할꺼다라는 확신을 가지며 방통대 졸업을 하게되었고
정말 운처럼 경북대 대학원에 석사과정에 합격하여 입학까지 하게된다.
심지어 돈까지 받아가면서 일도해가며 교수님을 도와 프로그램 제작까지 할 기회를 얻게되었다.
대학원 합격하니 또 자신감이 하늘을 찔러버렸다.
그리고 바로 자퇴하고 약사공부에 몰입했다.
수 많은 약국장님들을 만나게되었고… 또다른세상을 경험하게되었다.
(전)휴베이스 대표 홍성광 약국장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냥 지금처럼 돈벌지 무슨 약사를 해….”
약국장님 감사합니다. 꾸벅!! (__)
중앙대 약사되는길 Vs 돈버는길
(내가 한때 문호영 약사님이라는 타이틀때문에 구청에만 2번 끌려갔었다)
휴베이스 약국장님들이 워낙 신고를해주셔서 ㅎㅎ 덕분에 약국장님들과 많이 친해졌다. 그분들이 지금은 사실 많이 보고싶다.
휴베이스 검색해보니 대표이사도 바뀌었고 많이 달라졌나보다.
물론 이 두 대표이사님도 나는 잘 알고 있다.
“니가 그때 그 약사 사치잉!!!….” 이러면 두분다 날 알꺼다 ㅎㅎ
내가 도와드려야했는데 내 일만 한다고 정신이 바빠서 전혀 도움이 안되었다.
나는 선택을 해야했고…돈버는 길을 택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월 1000~2000만원정도씩 벌면서 수 많은 대표님들과 서울대 나오신 원장님들도 많이 만났다.
그분들은 한결같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문호영 대표님은 천재이십니다”
왜 다들 나에게 그렇게 부를까?
나 듣기 좋으라고 하시는걸까?
아니면 정말 내가 남들과 달라서 그렇게 말하는걸까?
나는 언제나 내가 만든 시스템으로 수익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의 과거와 내가 지금 만들어놓은 프로그램들…
로얄키워드 툴처럼 독점키워드 찾아내고 블로그에서 상위노출을 쉽게 할수 있는
나의 전략은 그들에게는 파격적으로 느껴졌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단지 내가 필요해서 만들었을뿐이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도움만 줬을뿐이다.
난 경쟁이 싫고 누구랑 다투고 싸우고 이기기 위해 힘쓰는게 너무 싫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그 누구와도 경쟁해서 이겨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만약 내가 누군가와 겨루어서 이긴다면? 내가 특별히 잘하는걸까?
장기를 내가 좋아해서 카카오장기를 설치해서 집중 해보았더니 9단이되었다.
하지만 나는 프로그램 실력이 있다보니내 실력 + 프로그램 실력 이용해서 9단이 되었다.
게임을 좋아해서 다른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내가 만든 툴을 이용해서 독점화를 만들었다.
블로그에서 상위노출을 쉽게 하기 위해서 내가 만든 로얄키워드를 이용해서 상위노출을 했다..
나는 학교에 다닐때에도 아주 불공평했다..
내가 잘하는건 공부가 아니라 프로그램과 응용이었는데….
그저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통과의례마냥 똑같이 잘해야하는것은…
내가 만든 프로그램으로 과목시험을 치면 만점 받을수 있을 자신이 있는데…
그렇게는 하면 안된다는 이상한 규정이 있었다.
지금 우리는 이것을 부정행위라고 말한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재미있는 사실 하나가 있다!!
돈벌때에도 이러한 규칙이 적용될꺼같은가? ㅎㅎㅎ
단순히 외우는거 잘하는 공부를 잘하는… 머리가 좋으면 돈 많이 벌까? 후훗~
여러분들은 프로그램 이용해서 남들보다 돈 더 빨리 벌수 있다면
그래도 배운대로 열심히 암기한거 이용해서 할것인가? ㅎㅎㅎ 미분이용해서 돈 벌고 있는가?
삼각방정식 잘 풀어서 지금 돈 많이 벌고 있는가?
그러 돈버는건 내가 손해안보도록 잘 세기만하면된다.
요즘은 전자로 대부분 거래하니 숫자를 몰라도 되긴하겠다…
도대체 나는 언제..어디에서부터 잘 되기 시작한것일까?
1. 어릴때 아버지가 돈 못버는걸 보면서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
2. 남들처럼 경쟁을 하는것이 아니라 독점만 해야겠다는 생각
3. 다들 다니는 대기업이 아닌 내가 나의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
4. 바른 생활 올바른 일을 하겠다는 생각
5. 그저 돈버는건 어릴때부터 쉬웠기때문에 그냥 막연히 돈 잘 벌꺼야라는 생각
나는 정말 타고난것일까?
나는 시대를 잘 타서 한달에 1000만원 벌수있는걸까?
2023년 7월 29일 이부분에 잠시 추가해야 할 부분이 있다.
지금은 챗GPT라는 인공지능 툴이 나온상태이다.
남들은 이 툴을 정말 이상하게 사용한다.
그저 질문을 던지고 그 결과값을 바탕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나는 챗GPT를 마치 또다른 무의식의 나를 다루듯 사용한다.
그 결과 나의 프로그래밍 실력은 수준급 이상으로 올라가게된다.
2023년 7월이후로 나의 수익은 지금까지 본적이 없는 매월 최고치를 계속 갱신하고 있다.
내가 돈을 잘 버는 이유가 있을까?
1.블로그에서 지수가 높아져 원하는 키워드로 상위노출이 잘되면 상품이 기존보다 더 잘팔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2.블로그에 방문자가 더 많이 와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홍보하는 상품, 분양, 자동차, 서비스를 보게되면 더 많이 팔리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나는 그저 한달에 110만원 받으면서 그들의 블로그가 방문자가 더 높아지도록 혹은 상위노출이 되도록 그렇게 되도록 관리를 도와주고 있다.
혹시 방문자가 늘어나길 원하고 내가 원하는 키워드가 상위노출 되길 원하고 또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매출이 많이 늘어나길 원하는가?
혹시? 지금 나만 돈을 벌고 있는것인가?
아니면 그들도 함께 돈을 벌고 있는것인가?
내가 돈을 많이 버는 이유는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도 돈을 많이 벌고 있기때문이라고 생각!!!
한분야에서 5년넘도록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는것은 대단한 일이다.
사업을 해본사람들은 알겠지만 1~3년안에 사라진다.
내 주변에도 그런 안타까운 대표님들 많고 위기에 몰린 대표님들도 많다.
나는 지금 내가 운영하고 있는 티온 사업장을 없애고 싶어도 버는 돈에 대해 세금을 내야하기때문에 없애고 싶어도 없애지 못하는 모순에 빠져버렸다.
매달 부가세랑 여러 내야할것들 고정으로 몇백만원씩 나가고있고 수익이 점점 커지고 있어서 없애기는 커녕 내년에 법인으로 돌려야할판이다.
실천을 해야한다
나는 곧 41살이 된다. 그리고 알아냈다.
(이미 난 2022년 현재 43살이며 곧 한달후에 44살이 된다)
내가 하고 있는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있는 일이며
남들이 하지 않고 있는 로얄키워드 특허 상표권 등록까지 해가며 1등전략을 통해 한분야에 더욱 깊이 있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운이다 믿어왔지만 나의과거와 살아온 환경 모든것들을 보면서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남들처럼 경쟁하며 싸우는 길이아닌 오직 나만의 길을 홀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당시에는 모든것이 우연이고 운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서 보게되면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고 있고 올바르고 가치있는 길을 가도록 계속 이끌어주고있다는 사실을 알게된것이다.
로얄키워드를 이용해서 나말고 다른사람들에게도 희망과 도움을 줄수있다는것을 알게되었다.
1.블로그 로얄키워드를 통해서 블로그가 성장하고 또 수익이 늘어나도록 만들어서 디지털노마드족이 될수 있도록 도와줄수있고
2.유튜브 로얄키워드를 통해서 작은슥슥이 색종이접기 인플루언서 영향력있는 브랜드도 만들어낼수 있게되었다.
그리고 그 실천을 내가 직접 해야지만 남들이 배울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내가 만든길은 다른사람들이 알수가없다.. 모른다.
내가 알려준적이 없기때문이다.
나는 남들이 가지못한 하지못한 그 영역을 개척하고 만들어나가고있다.
그들이 쉽게 따라할수 있도록 개념을 알려주고 그들에게 똑같이 따라하기 쉽도록 방법과 예시를 알려주면서 내가 행동해서 보여주게되면
그들이 모두 따라해서 나처럼 디지털노마드가 되고 영향력이 있는 인플루언서가 될수 있다는것을 이제서야 알게된거다.
나는 비록 천재가 아니지만…
남들은 나의 노력과 결과를 통해 천재라고 불러주고있어 정말 감사하다.
참으로 감사한일이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함께 오래 좋은 관계를 유지해가며 미래를 멋지게 만들고싶다.
지금까지 내가 이 자리에 있도록 도와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며
또 앞으로 계속 함께 참여해줄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남기며 글을 마치겠다…
나는 항상 새로운것을 만든다
난 새로운것 만드는것과 1등하는것 그리고 분석하고 응용하는것을 좋아한다.
나의 성향과 비슷하다싶으면 뭉치면된다.
이상 내가 한달 1000만원 버는것이 왜 쉬운지 알려줬다.
실제로 특정 구체적인 방법이 눈에 안보일수 있겠지만…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구체적인 전략까지 눈에 들어왔을것으로 본다.
그것이 보이는 사람들은 그냥 나와함께 하면된다.
난 분석하고 실천하는 지혜로운 그들을 찾고있는것이다.
누군가는 댓글에 그부분이 보인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것이고..
누군가는 이글을 보면서 느끼는것도 많고 실천해야하는것을 깨닫고 행동한다.
나랑 실제 부자들이 돈을 벌고 있는 올바른 방법으로
더이상 공부머리가 아닌 돈 잘버는 사람들이 벌고 있는 그 방법으로 함께 돈을 벌어보자!!
나는 남들이 잘때 일하고 남들이 생각할때 실천하고
남들이 나를 따라할때 나는 그저 나의 길을 만들어간다.
도대체 잠은 언제 자는것인가?
난 이미 시간개념, 돈개념 이런거 사라진지 오래됐다.
(네이버에서 워드프레스 블로그로 옮기는 지금 2022년 11월 17일 오늘도 몇시인지 아는가? 오전 1시 33분이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불로소득이 더 늘어날수있는지 새로운것들을 계속 분석하고 만들고 실천하고 응용하고 도전하고있다.
디지털노마드, 인플루언서 이 단어를 쟁취하고 싶다면 당장 시작하자!
2022년 11월 17일 현재 나는 지금은 이때랑 생각이 조금 다르다.
저 당시에는 완전 자동화를 꿈꾸며 그 방향에만 포커스를 맞춰서 대부분 자동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동들은 외부세력에 의해서 수정이되거나 변경이 되면서 자주 업데이트를 해줘야했다.
결국 자동이 아닌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나의 노력이 배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지금은 자동 중에서도 외부 관섭이 거의 없는 방향으로 더 구체화되었다.
게다가 자동에만 의존하는것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뛰는것도 중요하기에 노동도 어느정도 하고 있다.
그리고 4년전에는 내가 너무 자신이 넘쳐서 사람들을 많이 피했다.
전화도 4년가까이 받지 않았고 제주도 1년살이하면서 오로지 지인들 위주로만 살아왔다.
내년에 미국으로 갈 준비를 하는 가운데 늦은감은 있지만 다시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고있다.
그동안 안받았던 전화도 받기 시작했고 나와 많이 달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있다.
한달에 1000만원 벌면 할 수 있는 것들
4년동안 달라진 점이라면 자산부분에서는 아파트가 총 4채가 된 상태이며
그중 두채는 서버실로 운영하고 있다. AWS 아마존 서버도 EC2 서버 9대와 라이트세일 2개를 운영하고있다.
금전적으로는 이전보다 더 여유로워졌지만 소비는 이전보다 더 늘어났다.
제주살이 1년동안은 한달에 1500만원으로도 부족했었다.
그렇다고 너무 과소비를 한것도 아니였지만 이것저것 하는게 많아서 그렇다고만 생각했다.
이런 자동화 기기를 다수 구입하여 대부분의 서버들은 원격과 무인으로 동작한다.
그리고 4년전에는 없던 워드프레스 블로그가 다수 갖고 있다.
이중에는 애드센스 수익도 꽤 나오는것들이 있지만 공개를 하지 않고 나혼자 나만의 시스템을 꾸려나가고 있다.
아…잠시 코인으로도 수천만원정도 벌었었다. 그렇지만 자랑하고싶지는 않다.
지금도 계속 꾸준히 코인 수익도 들어오고있다. 남들은 하락장이라고 곡소리 날때 나는 여전히 코인이 늘어나고있다. 한달에 1000만원 벌었을때도 나는 코인에 돈을 따로 넣지 않았다.
남들 다 하던 코인 채굴도 2년전 초창기에 시작해서 몇천만원 벌고 그래픽카드랑 서버는 올해 여름부터 그냥 방치해놓고 있다.
그냥 팔아도 천만원 이상 나오는 돈이지만 그냥 놔뒀다. 중고로 팔고 사람만나는게 오히려 손해같아서 그대로 덮어놨다.
새로운 서버도 수십대 만들어서 아파트에 더 추가했다.
다가오는 미래는 어떤방향으로 흘러갈지 대략 계획이 되어져있어 그대로 진행을 추진하고있다.
향후 이 글을 언제 또 손볼지는 모르겠지만 2-3년 사이에 나는 또 지금과 다르게 많은것들이 바뀌어있을꺼같다.
한달에 1000만원 버는것이 중요한것은 아니다
돈을 버는것에 대해서는 이제 크게 집착하지는 않는다.
내가 해서 될일이 있고 내가 해도 안되는 일이 있다는것을 깨달았기때문이다.
그저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매일 감사하는 삶을 살다보면 된다.
※ 이 글을 읽는 대표적인 검색유입은 이렇다
맹근호, 순이익 1000만원, 대구 모든넷 (아마도 회사가 어떤회사인지 검색하는것같다)
경북대 자퇴 (이건 뭐지? ㅎㅎ), 대구 인문계 커트라인 (이부분도 지금은 25년이 지나서 나때랑 많이 다르다)
대구한의대학교 pc방 검색도 많이 하고 있고 삼성중공업 김인식 그리고 휴베이스 참약사 등등 검색이 다양하다
30대 인문계 고졸, 대구 페이약사 월급 (뭐 한 300~400정도 하겠지 이게 나도 처음엔 궁금했다)
엔시소프트 프로그래머 연봉 참고로 내가 스카웃 제의 받았을때가 2009년도일꺼다 그당시 5천 정도였다.
지금은 8-9천 넘겠지. 홍성광 약국? 이렇게 검색하는사람은 예의가 너무 없다. 홍성광 약국장님 이라고 검색해야지
네이버에서 검색유입이 있던 키워드라서 그냥 하나하나 적어보는거다.
워드프레스 블로그에서도 이런 유입을 받아야 하기때문이다.
서효근 경북대 저 키워드는 마음에 든다.
내친구 효근이가 경북대 가면서 나랑 영영 못보는 길로 가버렸지.
지금 저 친구는 삼성 중공업에 다니고 있고 지금은 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보통 삼성에 다니는 친구들보면 과장 달고 정년까지 버티던데 그럼 지금 곧 나올시기인가 45세가 정년아닌가?
대구 대건고에 나우누리는 또 뭐냐
날 찾는건가 ㅎㅎ
재미있다. 대구 인문계 고등학교 커트라인 검색을 많이 하는거 보니 고딩들에게 말해주고 싶네.
대학교 가봐야 다 바보되서 나온다.
그냥 너 하고 싶은거 해라.
내 아들 딸에게는 매일 이렇게 말한다. 하고싶은거 하라고
그래서 첫째는 요리사 한다고 하고 둘째는 베이비 한단다.
평생 아기로 살고 싶단다 초2인데 ㅎㅎㅎ
난 초2때 프로그래머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나이다.
9살때부터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었는데…
어느덧 프로그래머 문호영 이라는 브랜드로 살아가고있다.
앞으로 뭘해서 한달에 1000만원 벌까?
이제 내가 해야할 것은 워드프레스 블로그로 프로그램을 자동으로 판매 하는 일만 남았다. 판매는 내가하는게 아니라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 된다.
난 그저 그들이 경제적으로부터 자유로워질수있도록 기초를 만들어주자.
끝!~